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해진 우리는 ‘검은색’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버튼, 배경, 텍스트… 모든 것이 사각형 안에 담겨 있고, 우리는 그걸 손가락으로 터치한다. 하지만 만약 화면이 사라진다면? 더 정확히는, 화면이 눈앞의 현실 그 자체가 된다면?
구글이 최근 공개한 젯팩 컴포즈 글리머(Jetpack Compose Glimmer)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10년 넘게 연구해온 투명 디스플레이 UI 디자인 시스템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또 구글이 뭔가 만들긴 했는데 실제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자료를 읽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단순히 기술 데모가 아니라, 우리가 디지털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였다.

검은색이 사라진 세상: 투명 디스플레이의 역설
구글 디자인팀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설적이었다. AI 안경에서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 100% 투명한 상태라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처럼 LCD나 OLED를 생각해보자. 이 디스플레이들은 빛을 차단하거나 흡수해서 어두운 색을 만든다. 하지만 AI 안경의 투명 디스플레이는 정반대다. 빛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어둡게 만들 수가 없다.
이게 왜 문제일까? 안드로이드의 머티리얼 디자인을 떠올려보자. 밝은 흰색 카드 배경 위에 검은색 텍스트를 올리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투명 디스플레이에서 이걸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밝은 배경이 실제 공간 위에 강한 빛 덩어리처럼 나타나버린다. 눈부심은 기본이고, 배터리도 빠르게 소모된다. 게다가 밝은 빛이 주변으로 번져서 텍스트가 흐릿해지는 ‘할레이션(halation)’ 현상까지 생긴다.
구글의 해결책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밝은 배경 대신 어두운 표면을 기반으로 하고, 콘텐츠만 밝게 표현하는 것. 검은색을 ‘색’이 아니라 콘텐츠를 위한 깨끗한 바탕판(clean plate)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필요한 정보만 빛으로 떠오르게 하는 거다. 이 비유가 마음에 든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일 테니까.
픽셀에서 각도로: 새로운 측정 단위
스마트폰 디자이너라면 “이 버튼은 48dp로 만들어야지”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픽셀, 포인트, dp… 우리는 화면 크기를 숫자로 측정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AI 안경에서는 이 모든 게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화면이 사용자 눈에서 약 1m 떨어진 지점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렌즈 표면에 그려지는 게 아니라, 공간 속에 투사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은 시각 각도(visual angle)를 기준으로 삼았다. 몇 픽셀이 아니라 몇 도(degree)로 보이는지가 중요한 거다. 가독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 텍스트 크기는 0.6도 이상이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작은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는데, 팔을 쭉 뻗고 손가락 끝을 보면 그게 대략 1도 정도다. 그것의 60%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지만 읽을 수는 있는 크기.
사용자는 현실 세계를 보다가 의식적으로 UI로 초점을 전환해야 한다. 마치 멀리 있는 간판을 읽으려고 눈의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말이다.

폰트까지 새로 만든 이유
일반적인 폰트는 종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투명 렌즈 위에 표시되면 글자가 번져 보이거나 흐릿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구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 샌스 플렉스(Google Sans Flex)를 개발했다. 광학 크기(optical size) 축을 활용해 안경 환경에 맞게 세밀하게 조정한 폰트다.
구체적으로 뭘 바꿨을까?
- a, e 같은 글자의 내부 공간을 더 넓혔다. 작은 크기에서도 형태가 뭉개지지 않도록.
- i와 j의 점은 글자 본문에서 조금 더 떨어지도록 배치했다. 시각적 분리감을 높이기 위해.
- 가변 자간을 적용했다. 상황에 따라 글자 간격이 자동으로 조정돼서, 별도 설정 없이도 최적의 가독성을 유지한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루 종일 얼굴에 쓰고 다니는 기기인데, 글자가 잘 안 읽히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테니까.
색상도 다르다: 밝은 하늘 아래의 도전
색 대비 계산도 완전히 달라진다. 현실 세계가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밝은 하늘 아래에서는 선명한 빨간색이나 파란색이 오히려 희미하게 사라져 보일 수 있다. 햇빛의 밝기가 디스플레이의 빛을 압도해버리는 거다.
이 때문에 글리머는 기본적으로 채도를 낮춘 중립적 색상 팔레트를 사용한다. 흰색에 가까운 색을 활용해서 어떤 조명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보이도록 설계했다.
약간 아쉽긴 하다. 화려한 색상을 쓸 수 없다는 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제약이니까. 하지만 실용성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다. 멋진 UI를 보여주는 것보다 제대로 읽히는 게 먼저니까.
앰비언트 디스플레이: 조용히 다가오는 알림
일반 모바일 앱에서 알림이 뜨면 약 0.5초 만에 나타난다. 빠르고 강렬하다. 하지만 안경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깜박임(blink)처럼 느껴져서 사용자를 놀라게 만든다. 눈앞에서 뭔가 갑자기 나타나는 거니까 당연하다.
글리머는 알림 애니메이션을 약 2초에 걸쳐 천천히 등장하도록 설계했다. 사용자의 시야 주변부에서 부드럽게 중심으로 이동하며, 주의를 ‘요구’하지 않고 ‘초대’한다.
이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든다. “초대한다”는 말이. 스마트폰 알림은 우리의 주의를 강제로 끌어간다. 진동하고, 소리 나고, 화면을 켠다. 하지만 AI 안경은 다르다. 필요할 때만 조용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반면 음성 명령이나 제스처처럼 사용자가 직접 입력했을 때는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포커스 링(focus ring) 효과를 사용해 지연 없이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 균형감각이 핵심인 것 같다. 조용히 있다가, 필요할 때만 반응한다. 마치 좋은 비서처럼.

경쟁 구도: 메타 vs 구글 vs 애플
AI 안경 시장은 이제 막 열리고 있지만, 이미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주요 플레이어는 메타, 구글, 애플이다.
| 기업 | 현재 제품/계획 | 주요 특징 | 출시 시기 |
|---|---|---|---|
| 메타 | Ray-Ban Meta 스마트 안경 | AI 음성 비서, 카메라, 스피커 탑재. 디스플레이 없음 | 출시됨 (2023) |
| 구글 | 삼성과 협업 AI 안경 | 삼성 협업 모델 (올해), 투명 디스플레이 모델 (내년) | 2026~2027 |
| 애플 | Vision Pro / 미래 안경 | Vision Pro (고급 헤드셋), 경량 안경은 개발 중 | Vision Pro 출시 (2024) |
메타는 이미 Ray-Ban Meta 스마트 안경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디스플레이는 없지만 AI 음성 비서, 카메라, 스피커를 탑재해서 실용적이다. “메타야, 이게 뭐야?”라고 물으면 눈앞의 물체를 인식해서 설명해준다. 디스플레이 없이도 유용하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애플은 Vision Pro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했다. 무게가 있고 가격도 비싸지만, 경험의 완성도는 다른 차원이다. 애플답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아직 부담스럽다.
구글은 중간 전략을 택한 것 같다. 올해는 삼성과 협업한 AI 안경을 먼저 내놓고, 내년에 투명 디스플레이 모델을 출시한다. 단계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구글의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메타처럼 디스플레이 없이 먼저 시장을 테스트하고, 애플처럼 완성도 높은 경험을 준비하는 중간 지점 같다.
실생활 활용 시나리오: 상상해보는 하루
AI 안경이 일상에 녹아든 모습을 상상해보자.
아침: 출근 준비
눈을 뜨자마자 안경을 쓴다. 시야 오른쪽 상단에 조용히 날씨와 일정이 떠오른다. “오늘 오후 비 온대. 우산 챙기라고.” 음성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냥 보면 안다.
출근길: 내비게이션
운전하면서 스마트폰을 볼 필요가 없다. 도로 위에 화살표가 떠 있다. 마치 게임 속 길 안내처럼. “200m 앞에서 좌회전”이라는 텍스트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회의 중: 실시간 번역
외국인 동료와 회의할 때, 상대방이 말하는 걸 실시간으로 자막처럼 보여준다. 통역사가 필요 없다. 집중해서 듣고, 필요하면 자막을 확인한다.
점심 시간: 메뉴 추천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판을 본다. 안경이 각 음식의 리뷰와 칼로리를 조용히 보여준다. “이 파스타 별점 4.5점, 680칼로리.” 선택이 쉬워진다.
저녁: 요리하기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한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필요 없이, 시야에 다음 단계가 떠 있다. 손은 자유롭게 칼질하고 볶고. 눈은 레시피를 본다.
밤: 독서
누워서 책을 읽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그 단어를 바라본다. 뜻이 조용히 옆에 떠오른다. 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 시나리오들이 SF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하다. 문제는 자연스러움이다. 구글이 10년 동안 연구한 건 바로 이 자연스러움이다.
도전 과제: 넘어야 할 산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1. 배터리 수명
하루 종일 쓰려면 배터리가 최소 12~16시간은 가야 한다. 투명 디스플레이가 에너지 효율적이긴 하지만, 카메라, 센서, AI 처리까지 더하면 부담이 크다.
2. 사회적 수용성
구글 글래스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저 사람이 나를 몰래 촬영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AI 안경도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3. 가격
Vision Pro가 3,500달러인 걸 생각하면, 고품질 AI 안경도 최소 1,000~2,000달러는 될 것 같다. 대중화하려면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쉽지 않다.
4. 처방 렌즈 통합
안경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처방 렌즈와 투명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스마트폰도 처음엔 비싸고 배터리도 안 갔으니까.
미래 전망: 2030년의 세상
5년 후, 2030년을 상상해보자.
아마 지하철에서 AI 안경을 쓴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대신, 허공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제스처를 하는 사람들. 처음엔 이상해 보이겠지만, 금방 익숙해질 거다.
회사에서는 모니터가 줄어들 수도 있다. 안경만 쓰면 가상의 모니터 여러 개를 눈앞에 띄울 수 있으니까. 책상이 깔끔해지고, 자세도 좋아질 것 같다.
교육 현장도 바뀔 거다. 학생들이 역사 수업 시간에 안경을 쓰면, 교실 앞에 로마 시대의 건축물이 3D로 나타난다. 과학 시간엔 분자 구조가 눈앞에 떠오른다. 훨씬 생생한 학습이 가능해진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외과의가 수술하면서 환자의 CT 이미지를 눈앞에 띄워놓고 참고한다. 정확도가 높아지고, 실수가 줄어든다.
물론 부작용도 있을 거다. 사람들이 더 디지털 세계에 빠져들고,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안경 중독”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기술은 도구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구글이 “앰비언트 디스플레이”를 강조한 건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기술이 주의를 강제로 끄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조용히 나타나는 것. 그게 건강한 방향이다.
마치며: 빛으로 쓰는 미래
데이비드 올린 리스 시니어 비주얼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전통적인 디자인은 항상 직사각형 화면을 전제로 하지만, AI 안경에는 그런 경계가 없다. 이는 인터페이스를 픽셀에서 빛으로, 화면에서 공간으로 확장하는 시도다.”
이 문장이 모든 걸 요약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사각형 화면 안에 갇혀 있었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모니터… 모두 사각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가 사라진다. 화면이 눈앞의 현실 전체로 확장된다. 픽셀이 아니라 빛으로, 터치가 아니라 시선과 제스처로 상호작용한다.
솔직히 완벽하지는 않을 것 같다. 초기 제품들은 아마 불편하고, 비싸고, 버그도 많을 거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방향이 맞다는 게 중요하다.
구글이 10년 넘게 투명 디스플레이를 연구한 건, 단순히 멋진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과 기술이 더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그 미래가 곧 시작된다. 어쩌면 내년, 어쩌면 2~3년 안에. 당신의 눈앞에 조용히 빛이 떠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될 것 같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고? 안경 없이 어떻게 살았지?”
그리고 웃으면서 답할 거다. “그냥 살았지 뭐. 그땐 그게 당연했으니까.”
참고자료:
- AI타임스, “구글, AI 안경 디스플레이를 위한 신개념 디자인 공개”
- Google Design Team, “Jetpack Compose Glimmer”